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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미래신문 기자 / bmnews@bmnews.kr 입력 : 2020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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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의 불법적인 장기집권에 저항했던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1960년 3월 15일, 대한민국의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이승만(당시 3선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 부정 선거 실시 등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해왔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력한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사망함으로 인해 이승만의 재선이 확실시 되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유당의 이기붕 부통령 후보 또한 당선을 시키고자 학생들이 야당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요일 강제 등교 조치’를 실시했고, 3.15선거 당일에는 ‘공개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였습니다.
3.15부정선거의 결과로 이승만, 이기붕이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민주적인 결과에 대해 시민들은 저항을 시작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미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대구 지역의 야당 후보 유세 참가를 막기 위해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가해진 ‘강제 등교 조치’ 등에 반발하며 학생들이 ’2.28민주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선거 당일부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3.15의거’가 전개되었습니다. 시민들은 “협잡선거 물리치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의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당국과 경찰은 발포를 하며 폭력적으로 시민들을 진압했습니다.
그러던 중,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마산 3.15의거에 참가했다 실종되었던 16세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채로 4월 11일에 발견된 것입니다.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모습에 시민들의 분노와 슬픔은 극에 달했고, 전국적인 3.15부정선거 규탄시위, 즉 ‘4.19혁명’이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 약 4천여 명이 국회의사당 앞까지 행진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정치깡패’에 습격을 당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4월 19일, 전국적으로 10만 명 규모의 이승만 정권 퇴진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인 경무대 앞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발포로 경찰 4명을 포함한 115명이 사망하고, 727명의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당국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4월 25일에는 대학 교수 300여명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시위에 나섰으며 수만 명의 국민들이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마침내 하야를 발표하고 대통령 사임서를 제출하였습니다. 180여명의 사망자 및 6천여 명의 부상자를 낸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끝까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반드시 기억해야 할 4·19혁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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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미래신문 기자 / bmnews@bmnews.kr  입력 : 2020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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